최기영 기자 | 국민일보
2025-02-15 03:05
김관영(왼쪽) 광야아트미니스트리 대표와 윤성인 부대표가 지난 12일 경기도 광주 카페 ‘물러남’에서 문화예술 선교 사역으로서의 지향점을 소개하며 미소짓고 있다. 광주=신석현 포토그래퍼
경기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 계곡에서 발원한 하천 물줄기를 따라 1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황빛의 따뜻한 조명이 통창을 뚫고 새어 나오는 3층 높이의 대형 카페를 만나게 된다. 영업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여 만에 이미 지역 내 ‘인증샷 명소’로 자리매김한 브런치 카페 ‘물러남’이다. 지난 12일 오후 이곳을 운영하는 광야아트미니스트리 대표 김관영 목사는 소복하게 눈이 쌓인 카페 입구에서 인사를 나누며 ‘물러남’ 간판을 달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동네 이름인 ‘퇴촌(退村)’에 ‘물러남의 마을’이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이들을 찾아 복음을 나누고 병을 고치실 때마다 잠시 물러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눅 5:16)고 기록하지요.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던 때부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름이 아니었을까요.(웃음)”(김관영 목사)
주황빛 조명과 설경이 어우러진 카페 ‘물러남’의 전경. 광주=신석현 포토그래퍼
2층에 널찍하게 마련한 카페 공간 벽면엔 김 목사의 이러한 설명을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돕는 문장이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 ‘잠시 물러나야 다시 다가설 수 있습니다(Withdrawing to draw near).’ 기본적으론 커피와 음료, 이탈리안 음식을 판매하는 카페인 물러남에는 특별한 공간이 여럿 있다. 1층엔 지역 내 유일하게 어린이들이 부모님과 책을 보면서 놀 수 있는 ‘아책방’이 있고, 2층 미팅룸에는 20여명이 식사와 다과를 나누며 회의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설이 갖춰져 있다.
사시사철 변하는 ‘계곡 뷰(view)’를 바라보며 티타임을 가질 수 있는 별관은 고객들의 자리 경쟁이 가장 치열한 인기 공간이다. 광야아트미니스트리 부대표를 맡고 있는 윤성인 선교사는 “가족 단위 물놀이객들에게 입소문이 나 여름철엔 주차 대란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광야 뮤지컬 캠프에 마련된 연습실 공간. 광주=신석현 포토그래퍼
이곳의 반전은 또 다른 공간에 있다. 건물 외벽 물러남 간판 옆에 나란히 배치된 ‘광야 뮤지컬 캠프’라는 간판이 그 반전 스토리의 단서다. 김 목사는 “대중에게는 분주한 일상을 벗어나 맛있는 차와 음식, 행복한 쉼을 누리는 곳이지만 광야아트미니스트리에 소속된 50여명의 문화선교사들에겐 연습 공간이자 일터, 다음세대 문화사역자를 키워내는 대안학교”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카페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뮤지컬 연기자와 문화 예술 교육자로서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다. 2006년 ‘문화행동 아트리’란 이름으로 ‘종신 선교사들의 극단’을 표방하며 출범한 이래 선교사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며 멈춤 없이 기독교 창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려왔다. ‘루카스’ ‘더 북: 성경이 된 사람들’ ‘ABBA: 아바’ ‘요한계시록’ 등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들에게도 호평받는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극단으로 자리매김한 동력은 문화예술 선교를 향한 소명의식이었다.
뮤지컬 배우로 살아가던 선교사들이 연습 공간을 넘어 카페와 학교로까지 영역을 확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목사는 “무대도 조명도 음향도 엉망진창이었지만 성경의 숨결이 느껴지는 작품을 보러 객석을 찾는 분들, 문화 콘텐츠로 복음이 뭔지 알려주겠노라며 지인의 손을 붙들고 찾아오기도 쉽지 않은 소극장을 와주셨던 분들이 떠오를 때마다 당장의 생존이 아니라 다음세대 전승을 준비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09년 처음으로 3박 4일 동안 모여 성경 드라마와 뮤지컬을 연습하고, 준비한 공연으로 예배하는 문화 수련회를 열었다”면서 “차세대 문화예술 사역자 양성의 씨를 뿌린 셈”이라고 회상했다.
카페 물러남의 3층과 계곡 맞은편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이 ‘광야뮤지컬캠프’로 운영되는 대안학교다. 학교에는 캠프 사무엘(4세~초4), 캠프 브살렐(초5~중3), 캠프 임마누엘(고1~성인)로 나뉜 교육과정이 마련돼 있다. 윤 선교사는 “어린이를 제외하곤 주중엔 기숙 생활을 하면서 연기 노래 연출 기획은 물론 조명과 분장, 음향기기 운용법까지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카페 물러남이 품고 있는 잔디 광장에선 해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에선 종교를 떠나 이곳을 찾는 이들이 위로와 평안을 느낄 수 있는 대중적인 곡들이 리스트에 오른다. 경계와 문턱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온기를 느끼며 복음을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광야아트미니스트리가 사역의 출발선에 선언했던 슬로건이 그 바탕을 이룬다. ‘모든 사람이 보게 될 말씀의 영광’(사 40:3~8)이다.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문화사역자가 되자는 마음을 품고 묵묵히 걸어가는 겁니다. 때로는 광야가 나타나 어려움도 겪겠지요. 그러면 잠시 물러나 기도하며 그다음 걸음을 걸어가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일터로서의 광야아트미니스트리와 물러남의 정체성입니다.”(김 목사)